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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8-28 0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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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 꽃을 든 남자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는 시인의 시와 짧은 단상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쓰게 되는 지점, 또는 시를 써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수상은 시를 감상하는데 색다른 묘미를 주리라 생각한다. 일상적 삶에서 건져 올리는 시적 성찰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만상의 자연과 사물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시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글과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가 먼저 또는 단상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단상은 한 두 줄로 짧을 수도 있고 길수도 있다. - 수영넷 강경호 기자 -








꽃을 든 남자



1.

빈 좌석에 자리를 정하고 나서

내 눈에 띈 것은 하얀 꽃이었다

꽃을 든 남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찔레꽃입니다.

- 찔레꽃! 그런데

꽃송이가 왜 이렇게 작지요? 정말 찔레꽃 맞아요? 하고 내가 되물었을 때

예 맞아요 찔레꽃은 너무 슬퍼요하는

장사익이 바로 그 찔레꽃요


나는 속으로 어-하면서 그를 살폈다

그의 손

찔레꽃은 너무 슬퍼요보다 더욱 더 슬픈 손

노동의 흠집이 가득했다

베이지색 운동모 아래 불그스름한 낯빛

찔레꽃은 향이 좋아요 향수 대신 안방에 두면---

-- 하는 사이에 어린 찔레 두어 가지가 내 손으로 건네졌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꽃을 들고 있었다


2.

수선집에 맡긴 구두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나와 중고 냉장고, 중고 티브이 간판 곁을 지나는데

그가 밟히었다 황망히 개찰구를 빠져나가던 그의 뒷모습,

살림을 차려주고 싶었다

수도꼭지 견본을 진열해놓은 주방용품 가게를 지나는데

다시 그가 밟히었다 구겨 신은 운동화에 후줄그레한 옷차림,

콸콸 물이 쏟아지는 부엌을 선물하고 싶었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는데

불이 환한 금은 보석가게를 지나는데 그만 눈물이 났다


서면역에서 범일역에서 두 정거장 사이

찔레꽃을 든 남자, 찔레꽃 향기를 맡던 그 여자




살면서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불우해 보이는 사람, 그런 류의 사람을 한두 번 만난 것도 아니고 늘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일상사이고 다반사인데 그날은 집으로 와서도 계속 먹먹했다. 작은 유리컵에 찔레를 꽂아 거실 티브이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밤늦은 시간 일기장을 펴고, 구두를 찾으러 가는 길에 어떤 남자로부터 꽃을 받았다---오후에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현대백화점 옆 중고 가전제품을 팔고 있는 가게를 지날 때, 내가 왜 그 남자에게 살림을 차려주고 싶었는지 또 왜 부엌을 선물하고 싶었는지 그 때는 잘 몰랐었다.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나 또한 인생의 고비에서 무척이나 힘들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의지할 사람 하나 없고 그리하여 절대절명 내가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르며 기댄 곳이 있다. 바로 풀꽃, 그리하여 쓴 시가 <꽃기도문>이다.



사람의 기도문

사랑의 기도문

이제 내겐 효험이 없습니다

민들레야 엉겅퀴야 사랑초야


꽃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들레야 엉겅퀴야 사랑초야


-후략



이 시를 쓴 뒤,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날 꽃을 들고 있던 그 남자, 세상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찔레꽃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꽃을 건네받는 순간,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었던 그 짧은 시간, 그의 간절함이 내게로 소롯이 전해져 왔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차린 내 몸이, 내 몸속 마음이, 불이 환한 금은 가게를 지날 때 그만 눈물을 쏟고 만 것이었다.

지금도 이 시를 읽을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촉촉해진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미소 가 지어진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란히 꽃을 들고 앉은 두 남녀가 어떻게 비쳤을까


그러나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내가 정말 찔레꽃 맞아요? 라고 다시 물었을 때 예, 맞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면 이 시는 쓰여지지 않았다.


찔레꽃은 너무 슬퍼요하는 장사익이 바로 그 찔레꽃요


그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이 대답이 이 시를 쓰게 만든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장사익은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혼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자 소리꾼 장사익을 알고 있고 그 노랫말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 하고 내가 그 사람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게 된 순간, 바로 그 때가 이 한 편의 시가 점지된 순간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 나는 무슨 사연으로 이 생에서 만났을까?

서면역에서 범일역 두 정거장 사이, 어느 날 마주쳐 5분 남짓 나란히 앉았던 사람, 나에게 꽃을 건네준 사람,

그는 영원히 모르겠지만 시가 된 이 남자, 모르는 여자의 시집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무슨 인연이 이러한가?




김영미 시인이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1998년 계간 시전문지『시와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 2004년 한국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 2004년 제1시집 <비가 온다>발간 (출판사, 현대시 )

. 2011년 제2시집 <두부> 발간 (출판사, 시와 사상사)

.『시와사상』편집 동인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 현재는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

'나무 한그루'는 내가 즐겨 쓰는 아이디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를 들으면 술 생각이 나고 무엇보다 빈속에 한 잔을 좋아한다.


수영넷=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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