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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7-15 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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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 ② b 플랫, 빗줄기 조곡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는 시인의 시와 짧은 단상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쓰게 되는 지점, 또는 시를 써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수상은 시를 감상하는데 색다른 묘미를 주리라 생각한다. 일상적 삶에서 건져 올리는 시적 성찰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만상의 자연과 사물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시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글과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가 먼저 또는 단상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단상은 한 두 줄로 짧을 수도 있고 길수도 있다. - 수영넷 강경호 기자 -








b 플랫, 빗줄기 조곡


장마철에

볼만한 것으로는

빗줄기 밖에 더 있겠는가

창으로 다가가 빗줄기를 구경한다


저 부지기수 내리는 빗줄기 가운데

아무나 하나를 불러

성을 김이라 하자

김 수한무壽限無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한없이 풀어지는 압축파일을 따라

칙칙카포 사라사라센터 계곡을 지나 들을 지나 강을 지나


빗줄기 하나의 삶이 이렇게 유구할진데

이 땅 위를 기어가는


.

.

.

너와 나, 수많은 김 수한무들의 쿵작쿵작 엉금엉금


수직으로 서있다 꼬꾸라지든

수평으로 누워 질질 끌려가든

살고 죽는다는 것의 한몸뚱이여


흐르는 빗줄기에 몸을 싣고

주루루 죽죽 철석철석


장마철에

이보다 더 들을만한 시나위가락이 있겠는가

가로등과 유리창을 12간지로 두드리며

자축 인묘 신유 술해, 자축 인묘 신유 술해-------


- 계간지 다층에 게재 -




  내리는 비,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습들. 들판의 초록이 더욱 진해지고 풀잎 위를 구르는 빗방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의 우산을 둘이 나눠 쓰고 다정히 걷는 연인들의 모습,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책가방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집을 향해 달리는 학생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리고 카페의 탁자 위, 진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한 잔의 커피 등.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여기서 비는 들판의, 거리의, 또는 연인들의 배경, 즉 하나의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구실을 한다.


  호우경보가 내렸다.

  오늘은 분위기의 비가 아니다. 빗줄기, 바로 그 자신이 주인공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가늘고 약해서 부러지기 쉽고 오늘처럼 바람이라도 불면 내리지 못하고 옆으로 날린다. 꼭 나같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유리창에 칼금을 긋는 비, 시멘트 바닥에 부딪쳐 널브러지는 비, 운 좋게 꽃잎이나 나뭇잎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비, 하늘 꼭대기, 그 먼 길을 달려와 지상에 닿자마자 바로 수채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리는 비, 우리의 운명이 제각각이듯 이들이 지상에 닿는 모습도 참으로 제각각이다 휴---


  지상에 내렸다고 빗줄기의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흐르고 흘러 마지막 바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굴곡과 난관을 넘어야 하는가, 우리가 부대끼며 쿵작쿵작 엉금엉금 얼키고설키며 살아가는 세상사처럼.


  그래서 빗줄기의 일생을 조명하고 위로하고자 한다. 빗줄기를 불러 이름을 지어주고 배경이나 분위기메이커로써가 아닌 독자적인 하나의 존재, 하나의 인격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하늘 꼭대기에서 땅끝까지 그리고 바다까지 도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말고, 목숨이 쭉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김 수한무 바둑이와 두루미로 ---짓는다.


  하나의 빗방울 속에는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내장되어 있는가? 풀잎에 닿았을 때의 감촉, 흙에 스며들었을 때의 느낌, 바다 위를 떠돌다 햇빛 창창한 날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붕 떠오르던 순간의 황홀, 마침내 구름의 가족이 되었을 때 등등.


  주룩주룩 끝없이 풀리는 압축파일!

  호우전선은 지금 현재 남쪽지방을 통과하고 있다고 한다


  생멸은 존재와 비존재의 자리바꿈이다. 풀어서 말하면 생하면 존재가 되는 것이고 멸하면 비존재가 되는 것이다. 비나 인간이나 나아가 꽃, 나무,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만물의 속성은 다 한가지이다.


  이제 이름을 얻은 김 수한무는 주룩주룩 내리면서 드럼을 두드리듯, 자축이라도 하듯, 제 운명을 12간지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적어도 시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자축인묘 신유술해 자축인묘 신유술해




김영미 시인이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1998년 계간 시전문지시와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 2004년 한국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 2004년 제1시집 <비가 온다> 발간 (출판사, 현대시 )

. 2011년 제2시집 <두부> 발간 (출판사, 시와 사상사)

.시와사상편집 동인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 현재는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

'나무 한그루'는 내가 즐겨 쓰는 아이디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를 들으면 술 생각이 나고 무엇보다 빈속에 한 잔을 좋아한다. 개가 싫다, 주위에 개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풀, 나무, , 구름, 안개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나는 단연코 사랑지상주의자다.



수영넷 = 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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