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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05 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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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부산ART]‘에펠탑의 효과’를 탄생시킨 에펠 타워.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때 구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세워졌다. 석조 건물이 대부분인 미술의 도시 파리에 무게 7천 톤, 높이 320m의 앙상한 철골 구조물을 당시의 시민들은 용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진에서와 같이 지금 보아도 홀로 우뚝한 철탑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자료=오후규(자세한 사진 설명은 아래 `덧붙이는글` 참조)



海潭의 書藝漫評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뉴스부산은 지난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회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17번째 시간으로 "書藝에서의 心理作戰"를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





■ 뉴스부산ART : 해담의 서예만평 海潭의 書藝漫評 (17)



(17) 書藝에서의 心理作戰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1974년 8월 25일부터 판매된 ‘미인(신중현과 엽전들)’의 가사이다. 아마도 우연히 마주친 여인에 너무 반했나 보다. 황태인의 노래 〈제 눈에 안경〉에서도 비슷하다.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싫지 않은 그 사람
하는 짓이 내 눈에는 모두 모두 좋아 보여
어찌하면 좋아 좋아 당신이 좋은걸
사랑하며 살다 보니 내 눈에만 쏙쏙 드나~“


신중현의 노래에서와 같이 첫눈에 좋아 보이는 경우도 있고, 황태인의 노래처럼 (처음은 별로라도) 자주 보게 되어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미학’이 별로 완성도가 높은 학문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서예 작품에서도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의 경우는 학식과 미모가 뛰어나고 행실이 좋아야 한다면 서예의 경우는 어떤 점이 좋아야 할까? 이것과 관련된 몇 가지 참고 될 연구가 있다.


첫 번째는 완벽함과 호감도와의 관계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Elliot Aronson, 1932~)은 명문대 출신, 우등생으로 실수 없는 완벽한 사람과, 완벽하지만 가끔 사소한 실수를 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매력적인지 실험을 통해 밝혔다. 실험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사소한 실수를 하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라고 했는데, 사소한 실수를 하면 '저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인간미를 느끼고 덩달아 호감도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은 실수가 없는 평범한 사람보다 호감도가 낮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잘났으면 실수를 하는 것이 매력이고, 평범하면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수가 매력을 증진하는 것을 ‘실수 효과(pratfall effect)라 한다.


두 번째는 황태인의 노래 〈제 눈에 안경〉을 생각하게 하는 연구이다. 로버트 자욘스(Robert Zajonc, 1923~2008, 미국인) 교수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한자를 그룹별로 횟수를 다르게 보여주고 한자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하였다. 결과는 한자를 자주 접한 집단이 한자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았다.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한자 뜻을 몰랐지만 자주 본 한자일수록 '좋은 뜻일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자욘스 교수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새로운 대상에 자주 접할수록 호감이 증가한다.’ 하였다. 자주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감이 생기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라 하며, 일상에서도 자주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다.


세 번째는 단순 노출 효과와 비슷한 것으로 ‘에펠탑의 효과(Eiffel tower effect)’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에펠탑은 처음 지어졌을 때, 파리 어디에서나 보이는 ‘흉물스러운 철근 덩어리’라며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로 이루어진 파리에 무게 7천 톤, 높이 320m의 앙상한 철골 구조물은 시민들의 호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파리 어디에서나 흉물인 에펠탑이 보여 화를 냈던 사람도 계속 에펠탑을 보게 되면서 점차 호감을 갖게 되었다. 결국 자주 봄으로써 지금처럼 파리의 명물이 됐다. 이처럼 처음에는 비호감이었다가 단순히 자주 접하면서 호감이 생기는 경우를 ‘에펠탑의 효과’라고 하여 ‘단순 노출 효과’와 구분 지어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서예를 생각해 보자. 먼저, 법첩과 같은 완벽한 서법 서예에 호감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예술도 그러할 것이나 완벽한 형식이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면, 필자가 본 중국의 서커스(circus)는 기막히게 완벽한 묘기에 놀랐을 뿐이지, 인간적 매력은 없었다. 반면에 필자가 어릴 때 본 서양의 서커스는 달랐다. 긴 모자를 쓴 양키가 능숙하게 묘기를 부렸다. 연기인들은 당연히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였고, 이를 본 관중은 마치 실수를 보러온 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물론 고의적 실수임에도 관중은 야유가 아니라 그것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위의 첫 번째 논리가 그 답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공모전에서 자주 보게 되는 완벽한 안체(顔體), 구체(歐體)와 같은 정체나 빈틈없는 한글 궁체에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너무 완벽한 이들 서체보다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호태왕비[廣開土大王碑]의 서체나 판본체에 더 깊은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다른 서체는 너무 완벽하여 어딘가 모르게 나와는 거리가 있는 느낌이 있으나 호태왕비체나 판본체에는 그렇지 않다.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고, 나도 그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며 덩달아 호감이 든다. 왜 그럴까? 우리의 DNA가 자연성에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양복이 아니라 한복, 아파트가 아니라 초가집, 고속도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골길에 호감이 간다. 고대부터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아왔던 우리이기에 자연스러운 모양에 호감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인간의 호감은 알 수 없는 마음의 문제인지라 서예 작품도 ‘단순 노출 효과’나 ‘에펠탑의 효과’가 나타남은 당연하다. 편액에서와 같이 자주 보게 되어 좋게 보이거나, 처음에는 관심 없던 작품도 자주 보면 눈에 익어 좋아 보이기도 한다. 실제, 그룹전에 출품된 작품이 어쩐지 마음에 끌려 다가가 확인해 보면 역시 아는 작가의 작품임은 자주 경험하게 된다. 본인도 모르게 단순 노출 효과에 걸린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애른슨의 연구를 서예로 바꾸어 생각하면, ‘서예의 명가는 실수해도 그것이 매력으로 작용하나 평범한 사람이 실수하면 그것으로 망신’이라 해도 될 것이다. 대가가 기분으로 휘두른 획은 호연지기의 그것이고 소가가 그러하면 곧 서법에 어긋나는 만용이라 한다. 그러니, 문제는 명인이 되는 것이고, 이에 하루라도 빨리 이르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3가지의 심리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관련 기사, 海潭의 書藝漫評

. (16) 너무 늦음은 없다

-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3218





[덧붙이는 글]
[사진설명] ‘에펠탑의 효과’를 탄생시킨 에펠 타워.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때 구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세워졌다. 석조 건물이 대부분인 미술의 도시 파리에 무게 7천 톤, 높이 320m의 앙상한 철골 구조물을 당시의 시민들은 용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진에서와 같이 지금 보아도 홀로 우뚝한 철탑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보는 에펠탑은 분명히 가슴 설레게 함은 부인할 수 없다. 파리 시민들도 계속 에펠탑을 보게 되면서 점차 처음의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파리의 세계적 명물이 되었다. ☞ 기고, 칼럼 등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부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www.new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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