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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06 03: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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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潭의 書藝漫評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뉴스부산은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회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13번째 시간으로 『조선, 병풍의 나라』 전에 감사드린다"를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





海潭의 書藝漫評(12) - 『조선, 병풍의 나라』 전에 감사드린다




▲ 월하죽림도 10폭 병풍, 김규진, 2세기 초, 비단에 수묵,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서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병풍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지난해 10월 『조선, 병풍의 나라』 전(2018년 10월부터 12월 23일까지)을 개최하였다. 병풍은 출생, 결혼, 사망 등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사용했고, 오늘날에도 그 용도와 가치는 여전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조선의 병풍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또 그 규모가 얼마나 크며 다양한 목적으로 제작되고 사용된 것인지 잘 보여 주었다.


병풍은 구조상 규모가 크고 장식성이 있으며, 때로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병풍은 조선의 대표적 전통 서화 예술의 한 형식으로 실용성, 예술성, 그리고 현실적 편의성을 겸한 독특한 양식이다.


조선의 병풍은 주로 회화였지만 근대에는 서예도 많으며, 그 형식은 2~12까지의 짝수 폭이다. 주로 10폭과 8폭이 많으나 6, 4, 2폭의 병풍도 있고, 큰 것은 12폭도 있다.


병풍의 표면상 구실은 바람을 막는 실용성에 있었을 것이나, 예술성이 더해지면서 감상용으로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되었다. 종류는 가리개, 머리맡에 치는 침병(枕屛), 한 주제의 그림만으로 꾸민 왜장병(倭粧屛), 도장 등을 찍어 꾸민 백납병(百納屛), 수를 놓아 꾸민 수병(繡屛) 등이 있다. 병풍의 용도는 다양하다.


원래 궁중에서 사용하였는데, 점차 사대부가로 전파되었고, 이어서 일반 민가에서도 제사, 혼인식, 장례식, 돌잔치 등에 사용하였다. 물론, 오늘날에도 제례의식뿐만 아니라 호텔, 식당 등의 가변형 연회장에서 필요에 따라 방을 구분할 때 가리개로도 사용하고 있다. 이때의 병풍은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공간을 분리하는 의례용일 뿐이다. 이렇게 같은 병풍이라도 사용 장소나 목적에 따라 실용성을 가지기도 하고 예술작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용도가 이러하다 보니,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병풍은 하나의 큰 가산이었으며 양반의 자부심이기도 하였다. 일반 가정에서는 주로 종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병풍이 있었고, 대부분의 집에서는 병풍이 없었다.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이라 가지지 못했다.


예식장이 별로 없었던 옛날, 혼인식이 있을 때는 병풍이 필수로 있어야 했고, 없을 경우는 종가나 지인의 집에서 빌려 사용했다. 그러나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병풍은 흔해졌다. 복사판 병풍을 파는 사람들이 농촌에까지 왔으며, 웬만한 집에서는 비록 조잡하기 짝이 없는 병풍이지만 싼 값에 구입하게 되면서 갈증이 해소되었다. 물론 이런 형식상의 병풍과 선비나 서화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작품으로서의 병풍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감상용이 아닌 용도 면에서 보면 별로 손색이 없는 병풍이었다.



▲ 묵포도도 8폭 병풍, 최석환, 19세기 중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이번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전시한 병풍은 궁중과 민간 사대부가에서 사용했던 병풍의 종류와 특징을 조명하였다. 그중에는 높이 2m가 넘는 「금강산도 10폭병풍」*(1) (개인 소장), 「해상군선도10폭병풍」*(2)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금강산도10폭병풍」*(3) (개인 소장) 등이 눈길을 끌었고, 이 밖에도 보물 제 733-2호 「헌종가례진하도 8폭병풍」*(4) (경기도 박물관), 보물 제 1199호 「홍백매도 8폭병풍」*(5) (개인 소장) 등 국내 10여 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의 작품성 있는 대형 병풍 76점과 액자 2점을 8개의 전시실에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하였다. 어느 것이나 화려한 채색 병풍이었는데 이는 19세기 궁중 채색화의 일면과 사회상 그리고 우리의 병풍 문화를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을 듯 듯하였다.


*(1) 『월간서예』, 2019년 1월호, p. 58참조.


*(2) 해외 문화재 환수 일환으로 2013년 국내에 돌아온 것이다. 이 병풍은 대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고종황제가 독일 마이어 상사(世昌洋行)의 조선 지사장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olter, 1855~1909)에게 하사한 것인데, 필치, 김홍도의 신선 그림 도상 활용도, 화풍을 보면 도화서에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종은 독일로 돌아갈 때에 안전하게 귀환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병풍에 담아 독일로 귀국하는 볼터에게 선물하였다. 그 후 볼터는 그의 딸 마리온 볼터에게 이 병풍을 물려주었고 그녀는 다시 그의 딸 예거후버에게 이 병풍을 남겼다. 이 병풍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던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예거후버 여사는 3대에 걸쳐 지켜온 한국의 문화재를 세상 밖으로 내놓게 되었다. 2013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 이 병풍은 1년 6개월 동안의 수리 복원을 통하여 제작되었을 당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도판은 『월간서예』 2019년 1월, p. 60도판 참조.
*(3) 이 작품은 일반회화에서 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현재 남아 있는 민화 금강산도와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큰 화면이면서도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4) 『월간서예』, 2019년 1월호, p. 57참조.

*(5) Ibid.


정말 우리나라는 ‘병풍의 나라’라 할 만큼 병풍이 많고, 또한 누구나 관심이 높다. 병풍은 중국, 일본에서도 사용되나 유독 우리나라에서 우뚝하게 발전된 서화의 한 형식이기도 하다. 연원은 『예기』의 「명당위(明堂位)」에 ‘천자의 권좌 뒤편에 세워두었던 도끼 문양 병풍 *(6)’이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아주 옛날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한(漢) 나라 때부터 사용되다가 당(唐) 나라 때에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병풍은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에 나타난 것이 처음이고, 이후 신라에 이르러 686년(신문왕 6)에 일본에 금은·비단과 함께 수출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고려시대에도 여러 문집에 병풍에 관한 기록이 있다.*(7) 특히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한 조선에서는 의례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병풍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 시대부터 더욱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6) 도록 6페이지

*(7) Ibid.


병풍은 우리의 가장 커다란 서화의 전통 양식이지만 지금까지 병풍 자체를 조명한 전시나 연구는 드물었던 현실에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기획한 『조선, 병풍의 나라』는 2018년 연말 서화인에게 주는 큰 선물이나 다름없는 좋은 전시였다. 더구나, 전통문화인 병풍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지만 병풍과 관련된 다수의 관련 논문을 모아 도록으로 정리한 것은 서화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단지, 자수백수백복자10폭병풍(19세기, 국립고궁박물관) 외는 서예 병풍이 한 점도 없었던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가끔 서양의 미술관에서 규모가 대단히 큰 작품을 볼 때는 어쩐지 기가 죽는 기분이었는데, 우리의 병풍은 충분히 그들을 능가하는 것 같았다. 병풍마다 크기가 엄청날 뿐 아니라 폭마다 세밀하게 표현된 주제, 그리고 그 예술성은 분명히 우리의 세계적 자랑거리임에 분명해 보였다,



☛ “조선, 병풍의 나라”라는 주제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분명히 조선은 병풍의 나라였고, 그 흐름은 아직도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AI가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서화가들의 개인전에는 빠짐없이 병풍이 등장한다. 진부하기는커녕 병풍 없는 서화전은 무엇인가 허전할 뿐만 아니라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다! 병풍은 함부로 만들 수 없는 작품 형식이다. 한 번 만들면 훗날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므로 나름대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될 때 최선의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의미에서 ‘병풍은 함부로 만들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였는데, 이번 병풍전을 보면서 허튼소리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의 『조선, 병풍의 나라』 전은 많은 서화인들에게 어떤 새로운 자극과 아이디어를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평생 볼 수 없을 병풍들을 보며, 행복하게 관람한 서화인의 한 사람으로써 미술관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관련 기사, 海潭의 書藝漫評

. (12) 『논어』 2.4의 “不踰矩" (2),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2743

. (11) 『논어』 2.4의 “不踰矩" (1),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2705

. (10) 원광대학교 서예과 동문전,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2562




[덧붙이는 글]
☞ 기고, 칼럼 등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부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www.new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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