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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1-14 22: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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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潭의 書藝漫評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뉴스부산은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회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9번째 시간으로 '우리의 서예, 그리고 필묵정신'을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





▲ [뉴스부산] 조수현, 「古朝鮮 中心思想」, 弘益人間 理化世界(사람에게 크게 이익을 주고, 이치로 세상을 교화한다.), 95x190cm.




海潭의 書藝漫評(9) - 우리의 서예, 그리고 필묵정신



☛ 현담 조수현 교수의 칠순 기념전*(1), “붓과 먹의 정신”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였다. 칠순을 기념하기 위한 통상적 서예전이 아니었다. 현담은 유한한 인생에서 스스로의 지나온 그림자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서예 학자로서의 이론과 실제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 서예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현담의 일관된 서예 목표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드러내 보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1) 2018년 9월 13일~19일, 익산 예술의 전당 미술관 1층, 도록 『붓과 먹의 정신』, 도서출판 다운샘, pp. 1~355, 2018.


본고(本稿)는 현담의 칠순 기념전에 관한 비평도 아니며 축사도 아니다. 현담의 서예를 보며 우리의 서예가 추구해야 할 길, 스스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서예가에게 보기 드문 귀감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소개하는 정도이다. 이러함에 현담의 저술, 논문, 서력, 재임기간 동안의 경력 등은 다른 곳*(2)을 참고하기 바라며, 여기에서는 칠순 기념전에서 보여준 작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과, 보고 느낀 몇 가지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2) 『붓과 먹의 정신』, 조수현 저, 도서출판 다운 샘, 2018, 『묵가』 2018-9호 등.


☛ 현담의 서예관은 처음부터 그 목표가 달랐다. 물론 서예학자이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글씨를 잘 쓰기 위한 목적으로 전예해행초의 연마에 매달리지 않았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을 탐구하고 그것을 서예로 나타내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이를 위해,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이 은허문자(갑골문)를 창안한 것에 주목한 것이 그 시작이다.


한자는 본래부터 사용되어 온 우리글이고,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이후부터 사용된 또 하나의 우리글이다. 세계 언어사에 유래가 없는 민족이다. 현담은 이러한 우리의 조상을 ‘순박하고 슬기로운 민족, 위대한 긍지와 능력을 함양하는 민족’이라 하며 그 정기를 서예에 녹여내고자 하였다. 이는 현담의 “나의 서예관*(3)”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받아 마음으로는 진리를 증득하고 몸으로는 자연을 체득하여 소박하고 정감 있는 작품이 나오도록 〮정진하고자 한다.’라고 말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3) 『붓과 먹의 정신』, 조수현 저, 도서출판 다운 샘, p. 293, 2018.


이러한 서예관은 1993년 제1회 개인전부터 2018년 제5회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어 있어서 마치 『논어』 「위정」편 2.4*(4)의 모범을 보는 듯하다. 제1회전에서는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이르기까지의 옛 선인들의 질박한 삶의 모습을, 제2회전에서는 성자의 자취인 법과 경을 길 삼아 세상과 사회를 위해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제3회전에서는 한국문화의 색깔인 호방, 유려, 담백함을 서예로 나타내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은 앞서 말한 위정 2.4의 ‘지천명(知天命)’까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2012년 제4회전인 정년퇴임 기념전에서는 우리 서예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을 진실로 표방할 수 있는 서체’를 제시하여 또 다른 차원을 선보였다. 그리고 제5회전인 금년의 칠순 기념전에서는 『한국 서예문화사』와 인보집 『마음과 역사를 담은 전각 세계』와 함께 필묵 정신을 드러내 보였으니 4회전을 ‘이순(耳順)’이라 한다면 5회전은 ‘종심불유구(從心不踰矩)’의 경지라 해도 될 것이다.

*(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慾, 不踰矩."(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결심했고, 30세에 자아를 세웠고, 40세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50세에는 내 운명을 알았고, 60세에는 무슨 일이든 듣는 대로 수용했고, 70세에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경지는 완성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서예의 항구적 목표, 서예가로서 추구하여야 할 필묵 정신과 자세를 말한 것이고, 필자가 전시장에서 놀란 것도 바로 이러한 현담의 남다른 목표와 성취를 읽을 수 있었던 것에 있다.




▲ [뉴스부산] 조수현, 「新羅鄕歌 兜率歌(이두문)」, 48x71cm



☛ 일반인들이 서예작품을 보고 흔히 하는 말은, ‘저 작품은 무슨 서체인가?’ 라 묻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글씨, 참 힘이 있네!’ ‘기가 있네!’ 하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오해이나, 전자는 쉽게 설명할 수가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문인화에서도 죽세(竹勢), 난세(蘭歲)와 같이 강함이나 세력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듯 서예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겉보기의 힘이 아니라 작가의 정신에서 발현되는 내부적 힘이고, 이를 감지할 때 감동하게 된다. 겉보기 힘은 누구나 낼 수 있지만 내부적 힘은 깊은 수련과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 없다면 나타나지 않는다.


현담 서예를 얼핏 보면, 세력도 그렇거니와 서체도 분명하지 않고 세련미도 없어 보인다. 한자도 그렇고 한글도 그렇다. 양복을 입은 신사의 모습이 아니라 흙탕물에 옷이야 젖건 말건, 논밭에서 비틀걸음으로 쟁기질하는 농부의 모습이다. 구체, 안체, 왕체와 같은 중국 관체에 익숙한 사람이 본다면 연습 부족의 ‘초보’ 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절차탁마로 얻은 세련된 글씨가 무엇을 말하던가? 현담의 서예는 세련미의 극치라 하는 ‘왕희지의 서예’와 다르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 딱 그 하나의 자형이 아니다. 다소의 가감이 허용될 수 있는 여유로운 자형이고, 이를 통해 고대부터 오늘에 흐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 우리의 기상을 말하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서예에서의 힘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쓰기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연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그렇게 만들어지고서야 그렇게 되는 것이다. 현담은 많은 저서, 논문, 답사, 선적 사유 등을 통해 이러한 정신에 이르렀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


☛ *이상으로 현담 조수현 교수에 대해 서예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취보다 서예작가로서의 서예작품에 대해 살펴보았으나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무엇인가 들리는 듯하였다. 원광대학교에서 서예과가 폐과된 오늘, 서예과 개설 멤버였던 현담 교수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서예를 말하는 것 같았다.




▲ [뉴스부산] 조수현, 「神形妙合」, 다산선생 수기치인 사상(수도를 깊이 하여 정신과 몸이 하나 되게 하고, 자연에 합일 되도록 하라.), 33x136cm.



*원광대학교 서예과 개설 30주년 동문 초대전과 같이 열린 조수현 교수의 칠순 기념전은 생각되는 것이 많았다. 현담은 우리 서예의 정수를 꿰뚫었다. 그동안 우리의 정신이 빠진 중국의 5체 서예에 매달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서예에서 모양만 추구하는 것은 인문학에서 정신이 없는 서술과 다름없을 것이다.


*계명대학 김양동 석좌교수는 개막식 축사에서 “현담이 저술한 『한국 서예문화사』의 내용을 보고 내가 계획했던 책(한국서예사) 집필을 포기했다.” 하면서,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방대한 자료*(5)와 그동안의 연구 결과물 그리고 많은 논문이며 저술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니 더 좋은 것을 내기 힘들다.’ 하였다. 이것은 김양동 교수의 의례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산전수전을 지나고 자신의 생각으로 저술된 책이 몇 권이나 있을까? 전시장 입구에 비치되었던 『한국 서예문화사』는 현담의 서예 작품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5)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예 관련 자료, 특히 탁본은 수천에 이르며, 조수현 교수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장 재임 동안 이들 자료를 충분히 분석할 수 있었다.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고, 돈과 같은 이 자산을 죽을 때까지 투자하여 소진한다. 다양한 종목의 주식에 돈을 투자하듯 인생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면으로 시간을 투자하나, 주식 투자에 성공하기 어렵듯 인생도 그렇다. 그러나 현담의 투자는 보기 좋게 성공하였다. 현담의 목표는 달필이 아니라 필묵의 정신이며 환경도 좋았기에 자신 이외의 경쟁자가 없었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토끼는 거북이에 목표를 두었지만, 거북이는 산 꼭지의 깃발에 목표를 두었던 것과 같아 보인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관련 기사, 海潭의 書藝漫評

. (8) 제퍼슨의 묘비명,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2315

. (7) 韓國人이 본 日本[人]과 日本의 書藝,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1972

. (6) 용감한 서예가,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1972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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