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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23 22: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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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 1981년 `빠리 시립 따삐스리 아뜰리에 책임자`에 올라 1987년까지 7년간 근무했다. 사진은 지난 9월 18일 `해운대 K갤러리`에서의 이숙희 작가. `이숙희 따삐스리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오늘은 그 마지막 편으로 3) 전통과 재창조 편. 수영넷 Suyeong.net 강경호 기자




「수영넷 Suyeong.net」은 지난 9월 2일,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한 뛰어난 예술가를 재조명하는 코너를 [공지]했다. 이 코너는 예술가에 대한 소개와 함께 예술가의 작품과 사유(思惟)가 담긴 글을 몇 회에 나누어 게재할 예정이다. 이 코너를 통해 재야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예술가들이 혼신을 받쳐 일궈 온 작품세계가 소개되고, 평가받고, 상호 교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빈다.


오늘은 이숙희 작가의 ‘이숙희(李淑姬) 따삐스리 이야기 - 1) 따삐스리의 간략한 소개’ <9월 5일자>, 2) '전통의 전수(파리동양박물관 부속 아틀리에 이야기)' <9월 18일자>에 이어, 마지막 편으로 3) '전통과 재창조' <11월 23일>를 게재한다. 그동안 애써 주신 이 작가님께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독자분의 더 많은 격려와 관심을 기대한다. - 수영넷 Suyeong.net 강경호 기자 -




3) 전통과 재창조


외국에서 살다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라 안에서는 서로 부딪치고 복작거리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결국 후회와 그리움만 쌓이게 마련인 모양이다. 나 역시 그랬다. 고국은 먼 곳에 있어 한층 그립고, 소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한국은 내가 두고 온 애틋한 연인이었고, 언젠가 돌아갔을 때 나를 두 손 벌여 품어줄 어머니였다.


하지만 해외 채류 기간이 길어지면 점차 혼자 붕 떠 있는 듯 한 소외감이 들 적이 없지 않다. 크든 적든 정체성의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단단히 자기를 움켜쥐지 않으면 막강한 서양의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녹아 없어져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한번 씩 엄습해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까. 나도 나름대로 방패를 찾고 있었다. 서양 기술로 따삐스리를 배웠지만 그 속에 내가 담기를 바랐던 것은 동양정신이었다. 사실 그것은 내게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답게 주변에서도 그런 나를 격려해마지 않았다. 나는 그 길로 거침없이 나아갔고, 끝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기술에서 자유로워지자 나는 다양한 소재를 써가며 실험을 계속했다. 철사나 거친 재료도 마다지 않았다. 그러나 아예 ‘짠다’는 고전적 틀을 벗어나지 한 그런 소재들의 탐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어릴 적 붓글씨를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선 신문지 위에 개발새발 그리는 습작과정이 끝나면 마침내 닥종이 위에 글을 써도 되는 수업이 허용되었다. 종이를 여러 겹 접어 도로 펼친 다음, 각 칸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글자를 써넣던 추억이 내 피 속에 소중한 체험으로 녹아 있었다. 그렇게 빈 칸을 다 채웠을 때, 비록 그 속의 글씨들은 삐뚤빼뚤 균형이 안 맞았지만 무언가 아귀를 깔끔하게 맞추었다는 성취감이 나를 뿌듯하게 해주었다.


내 기억의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글씨에 대한 원천적 애정이 텍스타일의 질감과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붓글씨를 쓸 때의 경건한 마음가짐, 힘차고 곧아야 되는 손동작, 종이의 질감, 먹의 농도와 번짐 현상-그 모두를 텍스타일의 언어로 담고 싶었다.

따삐스리를 짠다는 것은 천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또 다른 조형언어를 필요로 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부분 팔레트 위에서 여러 색을 섞어 원하는 색깔을 창조해 낸다. 그러나 따삐스리 작가는 색실을 섞어 짜서 보는 이의 눈에 채색된 떨림이 피어오르게 작업한다. 화가는 화폭의 이 공간 저 공간을 바꿔가며 칠할 수 있다, 원 한다면 덧칠을 하거나 긁어내기도 한다. 따삐스리는 천 특유의 시스템 때문에 밑에서부터 한 땀 한 땀 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미 작업한 곳에서 오류를 발견할 경우, 쉽게 수선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면, 모두 들어내야 한다. 정밀성과 정확성, 그리고 마티에르들에 대한 감성적 인식이 필수적이다.



▲ 이숙희(李淑姬) 따삐스리(Tapisserie), 제목 : 산수 (300cm / 400cm), 1984년 작, 옛 중국 따삐스리의 현대적 번안이다. 서울투자금융 본관에서 주문 제작한 작품이다. 강경호 기자



그렇게 하나하나 완성된 작품들로 나는 1980년부터 7년 동안 꾸준히 살롱 도똔느(Salon d'Automne), 살롱 나시오날 데 보자르(Salon National des Beaux-Arts)에 참여했다. 비엔날르 드 따삐스리(Biennale de Tapisserie)에도 귀국하는 해까지 작품을 냈다. 중간에 파리한국문화관과 ADAC화랑에서 두 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1983년은 내게 중요한 해였다. 나는 내 따삐스리들을 안고 잠시 귀국했다. 인사동 선화랑에서 초청전이 있었다. 12년만의 모국방문이었다. 마침 현대문학의 소설 추천도 마감되어 소설가로서의 등단도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비록 따삐스리란 조형방식이 한국인들에겐 낯선 예술표현이었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큰 환영을 받았고, 언론계의 관심도 뜨거웠다. 전시회장의 방명록에는 문화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오랜 타국 생활에서의 고전분투가 비로소 위로를 받는 심정이 들었다.


다시 파리로 되돌아온 내게 하나의 목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루어놓은 창작의 결성을 위해서도 학문적인 정리는 남기고 싶었다. 마침 파리7대학 에서는 작가가 자기 작품과 논문을 함께 제출하는 개방적인 커리큘럼이 있었다. 나는 현대미술의 저명한 이론가로 손꼽히는 뽀뻬르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논문을 작성했다.


나의 논문 ‘고서((ko-sseu))에의 복귀를 위하여 - 전통의 역할 : 재발견과 전수’는 순전히 내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전통의 재발견과 전수의 문제는 몇 년간 창작 활동과 아틀리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꾸준히 화두로 삼아온 것들이었다. 우리 옛 것들을 잘 살려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온 나로서는 관례적이고 사회적인 두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는 섬유예술의 옛 전통을 작품 속에서 되살리는 일이 당연한 행위였다. 가장 현대적인 전수의 길로서는 옛 따삐스리의 가치 회복에 대한 질문과 근접이 절실했다. “역사적 고찰을 실과 기호의 일상적인 실천으로 연결하는 성공했다”고 내 작품을 평한 어느 전문가의 견해는 내게 더할 수 없는 격려가 되었다. 공간 속에서 동서양의 왕래를 결합시켜주며 시간 속에서는 가장 고전적 기술과 가장 현대적인 것을 응축시켜주는 역할을 나는 내 작품을 통해 실현하고 싶었다.



▲ 이숙희(李淑姬) 따삐스리(Tapisserie), 제목 : 글씨 1(202cm / 120cm), 1980년 작, 우리나라 고유의 떡살에 새겨진 무늬를 모티브로 삼았다. 목수 수(壽)자가 음각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닥종이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양모와 아마를 섞어 사용했고, 모헤어를 조금 활용하는 것으로 먹물의 번짐 현상을 살릴 수 있었다. 강경호 기자



한 언어가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쉴 새 없이 기호의 청각영상을 개선해 가듯 전통도 가장 미묘한 추상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현대적인 것과의 구체적 접촉을 가져야 한다. 전통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더 넓고 더 우주적인 감성관계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전통은 전달되어지는 내용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며, 이미 존재해 있는 과거의 것들을 가장 새로운 존재 속에다 적용해 융화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화가 자우우끼를 그 성공적인 사례로 들고 싶다. “자우는 현재 동양적인 유연함을 지닌 그의 붓으로 유럽의 유화물감 그림의 실체를 성실히 그리고 있다”고 한 비평가 장 레이메르의 말처럼 자우우끼는 고유의 민속적 전통 속에다 자기 예술을 연결시키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결코 그 속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전통의 영향을 받은 다음, 반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새로운 기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숙희(李淑姬) (수영넷 Suyeong.net 고문,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관련 기사, [공지] 이숙희 따삐스리 이야기 (http://suyeong.net/news/view.php?idx=869)
▶관련 기사, 이숙희(李淑姬) 따삐스리 이야기

- 1) 따삐스리의 간략한 소개(http://suyeong.net/news/view.php?idx=877)
▶관련 기사, 이숙희(李淑姬) 따삐스리 이야기

- 2) 전통의 전수(파리동양박물관 부속 아틀리에 이야기)(http://suyeong.net/news/view.php?idx=913)


[덧붙이는 글]
한 사람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한 뛰어난 예술가를 찾아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의 치열하고 빼어났던 창작의 유산이 지구촌 어디에선가 있음에도, '크리에티브'와 '작가정신'을 외면하고 교감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시대, 같은 작업을 공유한 '작가적 양심'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 수영넷 Suyeong.net 강경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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